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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h Yun

2022년 10월 20일

공간정보 서비스 스타트업 모빌테크의 3D 고정밀 지도 ‘레플리카 시티’

10여년 전만 해도 두꺼운 책자형 전국지도는 운전자들의 필수품이었다. 이제는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하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됐다.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게 된 것과 비슷하다.


자율주행 시대가 오면 어떨까. 사람의 개입 없이 모든 교통 상황이 통제되려면 지금보다 더 정확하고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지형지물의 위치 정보는 오차가 없어야 하고, 도로의 변화가 실시간 파악돼야 한다. 신호등의 점등 시간, 날씨, 횡단보도 보행자 통행량, 버스 배차 현황 등 고려할 변수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모빌테크의 김재승(34) 대표는 2017년부터 자율주행용 3차원 지도를 준비해왔다. 측량 전문가 사이에서도 다루기 어렵다는 강남 한복판을 컴퓨터 프로그램에 그대로 구현해 ‘21세기 김정호’로 불린다. 그를 만나 3차원 대동여지도 개발기를 들었다.


◇자율주행 자동차? 정밀 지도 먼저 필요하다


모빌테크는 3차원 공간 정보를 제공하는 기술 스타트업이다. 3차원 지도를 만들 수 있는 도구는 ‘라이다 센서’다. 라이다 센서는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 레이저를 사방에 쏘고, 빛이 사물에 닿았다가 다시 돌아오는 시간을 계산해 사물과의 거리를 측정하는 장치다. 모빌테크는 기업 맞춤형 라이다 센서 장비를 설계·제작한다.


3차원 고정밀 지도를 직접 만든다. 모빌테크의 정보 수집용 자동차 위에 달린 라이다 센서가 매일 같은 지역에 360도로 레이저를 쏘며 공간을 스캔한다. 카메라로 비유하자면 도로의 모습을 매일 파노라마 모드로 찍는 셈이다.


라이다 센서가 담아온 3차원 원천 데이터는 흑백 점 데이터 형태로 돼 있다. 여기에 카메라 영상과 위성 항공 사진, 2D 지도 데이터를 모두 합쳐 도시를 현실 그대로 구현해낸 것이 모빌테크의 ‘레플리카 시티’다.

말 그대로 컴퓨터 파일에 도시를 그대로 복제해 놓은 것이다. 구현된 지역 안에서는 신호등 점등부터 도로 위 차량 움직임까지 실시간 파악이 된다. 센서가 수집한 무수한 공간 정보와 여러 데이터를 한 데 모아 가공하는 것이 모빌테크의 핵심 기술력이다. 정밀 지도와 라이다 데이터 처리 관련해 등록된 특허 기술만 23건이다.


◇연구 고충 창업으로 풀어낸 대학원생


김 대표는 2007년 연세대학교 전기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최초의 스마트폰인 ‘아이폰’이 출시된 해다. 2008년 아이폰이 한국에 상륙하자 취미삼아 앱(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광고 없는 앱을 유료로 구매하는 게 보편적이었어요. 지도 데이터를 활용해 주차장 검색 앱, 주유소 검색 앱 등을 개발했습니다. 용돈벌이 삼아 시작한 일인데요. 내가 만든 서비스를 누군가 이용하는 뿌듯함을 한 번 느끼고 나니, 창업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습니다.”


2012년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정밀 지도의 필요성을 체감했다. “평소 자율주행과 로봇에 관심이 많아 드론 관련 연구과제를 도맡았습니다. 박사 과정에 들어가선 드론을 이용해 택배를 배송하는 기술을 만드는 데 집중했죠. 그런데 경로를 생성해 배달하려고 보니, 드론만 개발해서는 안 되겠더라고요. 아파트나 도심을 비행해야 하니, 지형지물의 높이와 생김새가 자세히 담겨 있는 공간 정보가 필요했죠.”


3년 동안 공간 스캔에 대한 연구를 이어갔다. 직접 연구하며 느낀 고충을 창업으로 풀었다.

비용이 문제였다. “공간 스캔을 위해선 라이다 센서가 장착된 정밀 공간 측량 장비가 필요한데, 해외 업체만 다루더군요. 터무니없이 비쌌습니다. 웬만하면 1억원이 넘고, 센서의 감지 범위가 넓은 장비들은 10억원을 호가했죠. 알고 보니 센서 자체가 비싼 건 아니었습니다. 장비를 직접 조립해 보기로 했습니다.”


직접 장비를 만들어 쓰면서, 관련 업계에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보급도 해보기로 했다. 2017년 4월 대학원 연구실에서 모빌테크를 설립해 동료들과 장비 조립 연구를 시작했다. “1억원 안되는 가격으로 장비를 만들어 판매했습니다. 주로 연구실 프로젝트 사업에 참여하거나 기업 부설 연구소의 문을 두드리며 장비를 소개했죠. 여러 기업에 맞는 장비를 제작하면서 모빌테크 기술 내공도 쌓았습니다.”


◇강남역에서 길 찾기 안 되는 고질병 해결


라이다 장비의 주요 고객은 대학교 연구실과 자율주행 기술 기업이었다. 기업이 원하는 라이다 장비를 만들어주고, 현장에 방문해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했다. 2018년에는 네이버와 현대자동차로부터 투자받으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사업 초기 연구원으로서 기술 개발에 매진했다면, 창업 3년차부터 사세 확장을 고민했다. “지도 제작 사업에 뛰어들기로 했어요. 고객 확장을 위해서였죠. 장비보다 특정 장소의 지도 데이터를 구하고 싶다는 문의가 많았거든요.”


빠르게 사업을 성장시키기에도 용이했다. “기업 의뢰를 건별로 일을 처리하는 방식 정도론 정비례로 성장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반면 지도 데이터를 만들어두고 의뢰에 맞게 제공하거나, 모빌테크의 서버에 데이터를 저장해두고 고객사가 클라우드를 통해 열람할 수 있게 하면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죠. 단일 장비를 판매하는 것과 비교해 기술 보호도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레플리카 시티 구현 모습. 코엑스 부근 공사 현장이 그대로 반영돼있다. /레플리카 시티


2021년 직접 고정밀 지도 데이터 ‘레플리카 시티’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도전장을 내민 곳은 강남역 일대다. 지도 만들기 어려운 곳으로 소문난 곳이다. “강남역 부근에서 지도 앱으로 길을 찾으면 유독 내 위치 파악이 안 되고, 지도가 방향을 잘 못 잡아 헤맨 경험이 있을 겁니다. 고층 건물이 밀집돼있어 GPS 수신이 어렵거든요. 여러 위성에서 데이터를 받아야 하는데 빌딩에 가로막히는 거죠. 그동안 쌓은 기술력을 시험해보고자 강남역의 지도를 먼저 만들기로 했습니다.”


위성 신호가 잘 안 잡히는 강남에서 오차범위 10cm 이내의 정밀도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의 위성 자료, 카메라 자료에 라이더 장비가 매일 새롭게 담아오는 3차원 정보를 덧입히는 방식입니다. 라이다 장비로는 미세한 변화도 감지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가로등과 같은 공공시설물의 파손됐는지 여부도 알 수 있는 정도죠.” 요즘도 매일 모빌테크의 데이터 수집용 라이다 장비 차량이 강남역 부근을 돌아다닌다.




레플리카 시티에 구현된 테헤란로의 모습. VR, AR용 파일로도 사용되고 있다. /모빌테크


2019년 8억원이던 매출은 장비 제작을 의뢰하는 고객사가 늘면서 2020년 24억원, 2021년 41억원을 넘어 올해 약 60억원이 예상된다. 지금까지 누적 투자 금액은 80억원이다. 주요 고객은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기업이다.


제5회 서울혁신챌린지 사업을 통해 서울산업진흥원 지원 기업에 선정되고, 서울혁신챌린지 Demoday x Try Everything에서 혁신상을 받아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1억7000만원을 지원받아 도시 변화 탐지 솔루션 등 개발에 활용했고, 스케일업을 위한 후속 지원으로 투자유치 및 전문가 멘토링을 받고 있다.


서울산업진흥원 등 도움을 받아 현재 국내 주요 도시 20곳에서 지도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2023년 1월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가 열리기 전까지 강남구 전체를 레플리카 시티에 구현하는 것이 목표다. “라이다 센서 장비를 보급하는 기업은 많지만 자체 제작한 측량 장비를 활용해 직접 지도를 만들어 데이터를 상용화한 기업은 모빌테크가 유일합니다.”


최근 현실세계의 기계나 장비, 사물 등을 컴퓨터 속 가상세계에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이 주목받으면서 공공 시설물 관리를 위한 정부 기관, 물류 창고 기업 등 다양한 기업이 모빌테크를 찾고 있다. “지도는 재료잖아요. 여러 산업군에 쓰일 수 있죠. 물류창고를 예시로 들자면, 창고 내부를 전부 라이다 장비로 스캔해 프로그램 내에 그대로 복제하고, 이동량과 적재량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효율적인 적재법과 이동 동선을 계산해 운영하는 거죠. 최근 신선 식재료 배달 사업이 커지면서 창고 운영에 공간 정보 기술을 도입하는 기업이 늘었습니다.”



독창적인 기술 개발이 전부가 아니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기술을 보호하는 건 특허를 빠르게 내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어요. 남들이 따라 할 수 없는 어려운 기술을 개발하는 게 중요하죠. 단순 기술 개발에만 몰두하지 말고,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는 가공법까지 모색해야 합니다. 노트북에 비유해볼까요. 사람들이 반도체 기판 제작법, 모니터 제작법, 운영체제 다운로드 방법 등 컴퓨터 조립법을 안다고 해도 하나하나 구입해서 만들어 쓰지 않잖아요. 이미 완제품인 노트북을 구매할 수 있으니까요. 고객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성공한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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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hosun.com/economy/startup_story/2022/10/21/YUUBPWVJ7ZCUTHGN5OE744F5V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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